김산 의병 창의지 경북 김천 김산향교

 

안녕하세요? 산비탈이 오늘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있었던 국립 교육기관으로 경북 문화재자료인 경북 김천 김산향교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김산향교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7호로 지정되어 있고 창설은 1392년(조선 태조1년)으로 추측이 되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인조 12년(1634년)에 진사 강설과 아들 강여구에 의해 중건되었습니다.

 

6.25 전쟁 이후 방치되어 퇴락했으나 전교 현경길이 1975년과 1979년에 보수하였다고 합니다.

 

김산향교 외삼문

향교는 명륜당과 동, 서재가 강학 공간을 이루고내삼문, 동무, 대성전이 문묘 공간을 형성하며 건물은 일반적인 전학 후 묘의 배치형을 취하고 있고 일반적으로 동, 서재를 명륜당 앞에 두는 것과 달리 뒤에 배치하였습니다.

 

김산향교 명륜당
명륜당에서 보는 대성전 가는곳

김산향교 명륜당에서 대성전 가는 곳이고 문은 세 개로 되어 있고 들어갈 때는 오른쪽 문으로 나올 때는 나오는 방향에서 오른쪽문으로 나옵니다.

 

대성전 들어가는 계단 양쪽에 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100년 이상 되었을 배롱나무 두 그루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꽃이 활짝 피었을 때 방문하면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져 한층 더 운치가 있어 보이고 대성전 계단을 오를 때는 제를 모시고학문을 수양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한 계단마다 두발을 가지런히 모아 올라가야 합니다.

 

김산향교 대성전

향교의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성현들의 위폐를 모시는 곳이고 막돌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둥근기둥을 세운 겹처마 맞배지붕의 건물이니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명륜당은 경사지에 세워져 있어 정면은 누각의 형식을 취하고 뒷면은 단층으로 되어 있고 막돌 기단 위에 초석을 놓아 대청의 왼쪽 내부의 두 기둥을 제외하고는 둥근기둥을 세운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고 동, 서재는 네모 기둥을 세운 홑처마 맞배지붕 집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성전에서 보는 명륜당

김산향교 대성전에서 내려오면서 계단에서 바라본 명륜당의 모습이고 왼쪽 건물 동재의 경우는 상류계급 자제의 기숙사이고 오른쪽 건물 서재의 경우는 서민 계급 자제의 기숙사라고 하는데 이렇게 당대 최고의 교육기관이라는 곳에서 수학 하는 학생들을 부모 계급으로 기숙사에서 차별하였으니 별로 좋은 문화는 아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현재도 도시 이름에 주(州) 자가 들어간 도시가 이 당시 큰 고을이었다고 하는데 주(州)에 있는 향교에는 70~100면 정도의 학생이 수학하였고 김산향교는 50~60명 정도 수학 하는 곳이었다 합니다.

 

이렇다 보니 유료인 향교에 들어가기가 엄청 힘들었다고 하고 입학하기 위해 보결 변호도 마다하지 않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 당시 실제 과거시험을 보아서 진사 벼슬이라도 얻으려면 무언가 배워야 하고 개인 과외를 하면 비용도 많이 들었으니 국립 교육기관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혜택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김산향교가 옛 명성을 뒤로하고 많이 쇠퇴하고 보존이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문화를 소중히 생각하고 에산 반영을 하여 잘 관리되었으면 하고 문화해설사님의 말씀을 빌리면 지방 향교가 잘 보존되고 경관도 수려한 향교가 강릉향교라 하니 관심 있으신 분은 찾아볼만하다 싶습니다.

 

■ 국립 지방 교육기관 향교

향교(鄕校)는 고려시대와 조선(校시대에 있었던 국립 지방 교육기관으로 일명 교궁(校宮), 재궁(齋宮)이며 고려시대에 처음 생겼을 때에는 향학이라 불렀으며 향교는 지방의 문묘와 그에 속한 학교로 구성됩니다.

 

고려의 향교

 

고려의 학제는 당나라 제도를 모방해 국립 교육기관으로 중앙에 국자감, 동서학당을 두고 지방에는 국자감을 축소한 학교인 향학을 설치하여 지방문화 형성에 이바지하였습니다.

 

987년(성종 6년) 경학박사, 의학박사를 각 1명씩 보내어 교육을 담당하게 하고 992년(성종 11년) 지방 주. 군에 학교를 세워 생도에게 공부를 권장하였다고 합니다.

 

1127년(인종 5년) 3월에 여러 주(州)에 학(學)을 세워서 널리 도(道)를 가르치라는 조서에 기인한다고 하고 학교의 제도는 공자를 제사하는 문선왕묘를 중심으로 하여 강당으로서 명륜당이 설치되었으며 교사는 조교라고 하였습니다.

 

의종 이후 국정이 문란하고 학제 또한 퇴폐하니 향교도 역시 쇠미한 상태였고 그 후 충숙왕은 학교를 진흥시키려고 이곡으로 하여금 여러 군(郡)을 순력 시켜서 항교를 부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조선의 향교

 

조선시대에는 1392년(태조 1년)에 여러 도와 안찰사에 명하여 학교가 흥폐로써 지방관 고과의 법으로 삼고 크게 교학의 쇄신을 꾀하였고 여기에서 부 목 군 현에 각각 1교씩 설립하고 점차 전국에 이르게 됩니다.

 

항교에는 문묘, 명륜당 및 중국 한국의 선철, 선현을 제사하는 동서 양무, 동서양 재가 있고 동서양재는 명륜당(강당)의 전면에 있으며 동재는 양반, 서재는 서류를 두고 보통 내외 양사로 갈라지고 내사에 있는 자는 내사성이라 하고 외사에는 내사 생을 뽑기 위한 중량 생을 두었습니다.

 

유생의 수는 부. 목에는 90인, 도호부에 70인, 군에 50인, 현에 30인으로 정하고 직원으로는 교수, 훈도 각 1인, 소군에는 훈도만을 두었다고 합니다.

 

1894년(고종 31년) 말에 이르러 과거제도의 폐지와 함께 향교는 완전히 이름만이 남아 문묘를 향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이후 교육제도의 확립에 따라 각종 교육 기고 나은 정비되었으며 향교는 1911년 조선총독부령에 따라 문묘 직원을 명에 직으로 두어 부운 또는 군수의 감독하에 두고 문묘를 지키고 서무에 종사하게 하였습니다

 

최고 교육기관 성균관

 

참고로 성균관에 대해 알아보면 성균관은 한국의 옛 대학으로 그 명칭은 고려 충선왕 때 성균관으로 개명한 데서 비롯되었고 공민왕 때는 국자감이라 부르다가 곧 성균관으로 복귀되었는데 1894년 갑오개혁에 이르기 가지 조선 일대를 걸쳐 한국의 최고 교육기관이었습니다.

 

■ 김산 의병 창의지 김산향교

김산향교는 1896년 3월 여영소. 여중룡 등이 김산 의병을 일으킨 곳인데 여영 소와 여중룡을 비롯한 김천 유생들은 1896년 1월 김산향교에 모여 통문을 띄우고 이병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상주. 선산의 이기찬, 허위 등이 의병을 이끌고 김천으로 들어왔습니다.

 

여영소 등이 이끄는 의병부대는 이들과 연합하여 3월 24일 김산향교에서 김산 의병을 결성하였는데 김산 의병은 이기찬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대구부로 진격하기 위해 3월 25일 김산향교를 출발하였으며 3월 26일 김천 지례에 이르렀으나 대구에서 출동한 관군과 맞서다가 3월 29일 해산하였습니다.

 

이후 흩어진 김산 의병은 4월 7일 김천 직지사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항일 투쟁을 계속 이어 갑니다.

 

■ 벚꽃, 연꽃 명소 연화지

 

김천 연화지

김산향교를 둘러보고 약 500여 미터의 거리에 있는 김천 시민의 휴식처인 연화지를 들렀습니다.

 

김천 연화지는 봄이면 벚꽃과 개나리가 어우러져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고 벚꽃 야간 촬영의 명소로 알려져 있으며 여름에는 은은한 연꽃의 향연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연못이니 김천 여행을 하면 한 번쯤 들러 가시기 바랍니다.

 

연화지 둘러보기

 

벚꽃명소 연화지가 한여름에 품은 연꽃 향기에 취하다

■ 김천시 가볼만한 곳 연꽃 향기 품은 연화지(鳶嘩池) 산비탈이 걷기운동을 겸하여 김천에서 가볼만한 곳 김천시 교동에 위치한 연화지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김천시 교동 연화지공원은 조선

sanvital.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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