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정청 초등셈본 교과서 속의 정부수립 이전 생활 모습

 

1947년 5월 군정청 저작겸 발행, 조선서적인쇄에서 인쇄된 5학년 2학기 초등 셈본 교과서 속의 셈본 문제풀이를 통해 해방 이후 정부수립 이전의 생활상을 간접적으로 살펴볼 기회를 가져보겠습니다.

 

초등 셈본이라 함은 셈본(산수,수학)과목의 등급을 말함이고 이 당시 초등학교 명칭은 국민학교 라 불렀습니다(본문참조)

 

미군정청(美軍政廳)은 8.15 광복이후 1945.9월 ~ 1948.8.15일(대한민국 정부수립일)까지 존속한 남한 통치를 위해 해방직후 미국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한반도 북위 38도선 이남을 점령(점령군)하고 재 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미군정청, USAMGIK, United States Military Government in Korea)을 말합니다.

 

1947년 셈본 문제풀이를 통해 보는 생활모습

 

미군정청초등셈본미군정청초등셈본조선서적인쇄미군정청초등셈본목차
1947년5월 초등셈본(5-2) 표지,발행자,목차

 

초등 셈본 (5-2) 저작 및 발행자는 군정청문교부, 1947년 5월 30일 발행, 정가 17원(圓), 인쇄자(발행소)는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서울 용산구 용문동 38번지, 대표자 조진주).. 발행한지 만75년이 되어갑니다.

 

이 때의 17원(圓)은 오늘날 얼마의 가치일까요?

 

화폐개혁의 이력을 보면 190.8.28일 조선은행권에서 한국은행권으로 1953.2.17일 원 -> 환(100 : 1), 1962.6.10일 환 -> 원(10 : 1)이고 환 화는 1975.3.22일 이후 유통정지 되었습니다.

 

하기 본문에 나오는 이 당시 쌀 한 가마니 가격을 비추어 볼 때 17원(圓)은 그렇게 작은 돈이라고 볼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군정청초등셈본풀이(천평,비중)
군정청초등셈본풀이(천평,저울,비중)

 

지금이야 정밀한 디지털 저울이 다양하게 나와 있어 편리하게 무게를 달 수 있지만 이 당시는 천평(천칭)으로 불리는 저울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셈본 문제풀이입니다.

 

무게추를 올려놓고 좌,우 대칭의 무게 차이를 비교하여 중량을 구하던 방식이었고 7~80년대까지만 해도 공고,공대에서  화학,물리 시간에 분석도구로 사용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참나무, 오동나무 나무토막 종류의 부피에 따라 무게가 다르다는 원리를 이용하여 비중을 다루고 있는 수업이 아주 흥미로와 보입니다.

 

군정청초등셈본풀이(가족생활)
군정청 초등셈본풀이(가족생활)

 

미군정청 초등셈본(5학년2학기) 가족 식사 모습을 통한 경우의 수(수열) 문제풀이를 통해 아버지,어머니,아이들 4명의  대가족의 모습을 볼 수가 있네요.. 사실 이 정도면 분가한 핵가족이고 실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어머니,작은아버지,고모 ,다수의 형제들 등 보통 10~15명의 대가족이 함께 작은집에서 부대끼고 살아 왔었지요

 

물동이로 물 머리에 이어 나르고 디딜방아로 곡식 찧어 재료 장만해서 아궁이에 나무로 불 지피며 연기에 눈물 흠뻑 쏟아 내며 음식 장만하던 시절을 지금 상상이나 할지.. 시집살이 그렇게 살라하면 하루도 살기 힘들다고 도망갈 것 같습니다..ㅎ

 

군정청초등셈본풀이(상급학교진학)
해방이후생활(상급학교진학,직업,저축)

 

어느 국민학교 졸업 생도 105명 중에 5분의 3이 상급학교(중학교)에 진학한다고 하고 동네 480호 중 5분의 2가 농업, 3분의 1이 공업에 종사하고 있다하고 수입의 3/20씩 저금을 하고 있다하니 아마도 서울 사람 기준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6~70년대에도 시골에서 국민학교 졸업후 상급학교인 중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고 1960년대 군사정권 때 국민 계몽 운동으로 "문맹자가 없는 마을 재건의 마을" 이라는 운동을 할 때이니 국민학교 나와서 한글이라도 깨우친게 천만 다행이고 뭐 자식들에게 편지라도 한 통 받으면 동네 글귀나 아는 사람한테 읽어달라 하고 답장 대필해달라 하던 시절이었어요

 

진학은 커녕 국민학교라도 졸업후 여자들은 도회지로 식모살이 떠나고 남자들은 도회지에 나가 판자촌,지하셋방에 살며 양말공장, 탁구공 공장, 성냥공장, 자전거포,목공소,덕방앗간 등에 소년공으로 취직하여 시골에 남아 있는 식구들 살림살이 보태기가 급급하였지요

 

그래도 명절이 되면 하이칼라 멋부리고 가다마이 빼입고 기차타고 택시(짚차)대절해서 가오잡고 고향길에 나섰으며 시골에 기다리는 조카, 동생들은 난생처음 구경하는 종합선물과자셋트,귤한꾸러미,넥타(과일쥬스)맛 보는게 희망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군정청초등셈본(교통,노동시간,서울인구)
서울인구수, 비행시간,일노동시간

 

서울시 인구가 120만명이라 나오는데 군정청에서 이 교과서를 발행한 1947년에 대한민국 인구가 2,000만명 넘어섰다고 하고 현재는 서울 인구수 950만 9,458명, 경기도 인구수 1,356만 5,450명, 대한민국 인구수 5.162만 8,117명 이라 하니 격세지감을 느끼며 7~80년대 베이비붐의 농촌에서 서울로 대이동의 격변기 역사가 있었네요

 

비행속도가 1시간에 630Km, 자동차 속도는 1시간에 45Km 였다니.. 부산에서 원산까지 바닷길은 269Km 기선으로 10시간 소요 되었다 하고 서울 부산 428Km이니 자동차로 쉬지 않고 10시간여를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네요

 

인천에서 청도까지 320Km, 청도에서 상해까지 400Km ... 아주 가까운 거리네요..

 

상해로 가는 기선의 속도 1시간에 19놋트(Kn) ..1놋트(Kn)은 1.852Km .. 청도까지 약 19시간 소요, 2일 휴식 후 상해까지 약 215시간 소요, 청도, 상해 가는길도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이네요

 

그래도 남북이 분단 되기전 기차가 다녔으니 가장 편리한 교통수단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고 우리가 늘 누리는 공기의 고마음을 모르듯이 늘 못누리고 살던 세상은 또한 이로움을 모르고 살고 있으니 스마트폰의 편리함을 알듯 북한 지역을 통과하여 중국으로 러시아로 유럽 대륙으로 기차가 달린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생각이 듭니다.

 

위정자들의 안보팔이가 안타깝고 경제 협력을 통해 철로길이라도 뚫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1947년 셈본 교과서로 보는 샐활상.. 쌀 한 가마니 가격이 850원(왼쪽사진)으로 나오는데 본 교과서 가격이 17원이었으니 교과서 가격이 상당히 고가였음을 알 수 있고 쌀밥은 켜녕 강냉이 쌀도 없어 산나물 등 구황식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에 고가의 책값에 공납금에 자식들 글 한자 깨우쳐 주기 힘든 시절이긴 하였겠습니다.

 

당시 어느 공장 근로자(사진 오른쪽) 1,440명이 일 8시간씩 일하고 1시간씩 연장근무를 할 때 노동시간에 대한 문제풀이가 나오는데 이 당시 하루 8시간 근로시간이 노동자의 기본권이 어느정도 인정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80년대까지도 한 달에 쉬는날이 거의 없고 기본 인권이 무시되던 노동현장이고 아직도 일부 몰지각한 경영자가 운영하는 기업은 온갖 부당노동 행위를 일삼고 있지만 1947년 당시 셈본 문제 풀이를 통해 노동 기본권을 엿볼 수 있는 문제이군요


 

국민학교 -> 초등학교 명칭변경

 

1895 ~ 1905년(소학교), 1938 ~ 1941년(보통학교)라 명칭, 이후 1941년 일제칙ㄱ령 제148호 "국민학교령" 에 의해 국민학교(國民學校)로 명칭 변경 되었으며 이는 황국신민을 양성한다는 일제강점기의 초등교육 정책을 반영한 것입니다.

 

1995년 8월11일 일제의 잔재를 청산학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국민학교 명칭을 변경 발표하고 1996.3.1일부로 초등학교(初等學校)로 명칭변경하게 되었습니다.

 

해방이후에도글귀나 아는 사람이 거의 전무하고 오늘날에도 일부 사람들은 글자 하나 읽지 못하는데 일제강점기때야 오죽했겠습니까?

 

글귀 몇자 알고 앞잡이 노릇이나 하다 미군정청 시절에도 그저 글귀 몇자 알고 일제강점기 때 앞잡이 경력으로 글 몇자 써본 경력으로 계속 관물을 선점하고 기득권화 되었으니 오늘날까지 잔재가 청산되지 못하게 되었다고 보야야 할 것입니다.


어렵게 살아본 사람들이 지금도 힘들게 살아가는 많은 상대적 약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밥술이나 떠먹고 산다고 어려웠던 과거를 잊지 말고 그 기억들을 교훈 삼아 다같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데 조금씩이라도 기여햐였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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